공정하다는 착각 리뷰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 능력주의의 함정과 대안

공정한 경쟁은 존재하는가?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하버드 대학교 정치철학 교수다. 그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능력주의(meritocracy)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여겨진다. 즉,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성과를 내고, 그에 따라 보상을 받는 것이 정의롭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샌델은 이러한 사고방식이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개인의 자존감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능력주의의 그늘: 승자는 오만해지고, 패자는 자책한다

능력주의가 공정하게 보이는 이유는 출발선이 같다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전제 때문이다. 하지만 샌델은 이 전제가 현실에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는 단순히 시험 성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경제적 여건, 가정환경, 교육적 지원 등 다양한 요인이 개입한다. 따라서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는 자신의 성공이 온전히 노력과 능력 덕분이라고 믿게 되고, 반대로 ‘패자’는 자신의 실패를 개인의 무능함으로 여기며 더욱 깊은 좌절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능력주의가 심화될수록 사회적 이동성은 오히려 줄어든다. 교육이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가정의 아이들이 더욱 좋은 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는 구조는 지속되고, 이는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한다. 샌델은 능력주의가 공정성을 가장한 ‘착각’이며, 이는 사회 구성원 간의 연대와 협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평등한 기회보다 중요한 ‘조건의 평등’

샌델은 능력주의가 아니라 ‘조건의 평등(equality of conditions)’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경쟁의 출발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미국의 사상가 제임스 애덤스(James Adams)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이란 단순한 신분 상승이 아니라, 누구나 존중받으며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능력주의가 강조될수록 개인의 성취와 실패는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환경, 운, 사회적 지원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능력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겸손: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가치

샌델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연대와 공동체 정신이 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는 동시에, 실패한 사람을 무능력한 존재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는 계층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연대를 약화시킨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샌델은 겸손(humility)을 강조한다. 우리는 성공이 단순히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이 아니라, 운과 사회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겸손함이야말로 능력주의의 차가운 경쟁 속에서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라고 말한다.

결론: 공정하다는 착각이 던지는 메시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현대 사회의 핵심 원리로 자리 잡은 능력주의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공정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능력주의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샌델은 단순한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조건의 평등을 보장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능력주의의 함정을 인식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결국, 공정한 사회란 능력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가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사회일 것이다.

다음 이전